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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글쓴이 등록일 추천 조회
전설의 이탈리아 군대 juna 2012-09-03 09:55:02 106 707
1940년 6월 제 2차 세계대전 개전

이탈리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선전포고한다. 하지만 단지 히틀러의 전과를 질투한 뭇솔리니가 즉흥적(...)으로, 그야말로 무계획적으로 참전했기 때문에 전쟁에 필요한 물자의 비축도 거의 없었고 이탈리아 선적의 상선도 전세계에 흩어져 있던 상황이었기에 선전포고 2개월 내 외양에 나가있던 상선 대부분이 영국해군에 나포되어 버린다. 또 어떤 작전계획도 명확히 계획하고 있지 않았었기 때문에 먼저 선전포고해놓고도 10일간 어떠한 군사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1940년 6월 남프랑스 전역

독일군에게 유린되어 항복 직전인 프랑스에 침공한 이탈리아군은 불과 2개 사단도 안되는 프랑스군의 반격을 받고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프랑스의 항복이 좀 더 늦었다면 이 프랑스군 부대는 이탈리아령을 침공할 계획이었음.




1940년 10월 그리스 전역

이탈리아는 21개 사단을 동원해 그리스를 침공했지만 그리스군 13개 사단의 반격에 알바니아까지 후퇴해 붕괴 직전까지 몰린다. 그리스는 친 독일적인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연합국측에 가담.




1940년 12월 이집트 전역

영국령 이집트를 침공한 이탈리아군 7개 사단은 영국군 2개 사단의 반격을 받고 패주. 13만명이 포로가 되고 이탈리아령인 키레나이카까지 잃는다. 이탈리아가 무계획적으로 저지른 발칸과 북아프리카의 실정을 구원하기 위해 독일은 발칸을 제압했고 아프리카 군단을 편성해 파견한다.

하지만 이 발칸 제압을 위해 발바롯사 작전 발동은 1개월이나 늦어졌고 북아프리카 전선에도 7,000대의 트럭이 파견되었는데(당시 동부전선 전체에서 1만 4000대 밖에 없었음) 이것이 동부전선의 초기진격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된다. 




1940년 10월 타란토.

영국해군 지중해함대의 항모 일러스트리어스에서 발진한 소드피쉬 21기가 타란토항의 이탈리아 주력함대를 공격. 전함 콩테 디 카부르는 대파착저, 전함 리토리오, 카이오.듀일리오 중파. 영국해군의 손해는 소드피쉬 2기.




1941년 3월 마타판 해전.

마타판에서 이탈리아와 영국 수상함대가 격돌. 이탈리아 해군은 중순 3척을 상실했지만 영국해군의 손해는 전무.




1942년 북아프리카, 튀니지.

25만의 이탈리아군 병력은 영국군 3만 5천과 전투, 튀니지에서 항복했다.




1942년 12월 동부전선 

돈 강변에서 이탈리아 제 8군은 소련군의 공격을 받자 바로 모든 병기를 포기하고 패주했다. 바로 전달인 11월달에 거의 비슷한 소련군의 공격을 받았던, 훨씬 장비가 열악했던 루마니아군은 며칠간을 선전하며 전선을 유지했다. 




1991년 걸프전 

이탈리아 공군의 토네이도 전폭기 이십여기가 출격, 왠지 첫 실전 공중급유에 이탈리아 공군의 토네이도는 절반이 실패하고 기지로 바로 귀환. 나머지 십여기는 이라크군 군사시설을 공격했지만 그중 몇기가 격추되어 파일럿은 포로가 되었다. 






< 이탈리아군의 일화 > 






참호속에서의 이탈리아군.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독일의 롬멜 원수가 이탈리아군의 참호를 방문했다. 하지만.....그 때!! 영국군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이탈리아군의 병사와 장교는 모두「오 성모 마리아님!」이라고 외치며 지면에 엎드렸다.
이 광경을 지켜본 롬멜 원수는 이탈리아군 장교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도를 멈추고 반격명령을 내리시오. 귀관이 할 말은 그것 뿐입니다. 」




이탈리아군 포로의 취급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 장교에게 무장한 이탈리아군의 중대가 항복하기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리품을 수집하기 바쁜 영국 장교는 그들을 무시한채「시끄럽다!, 저쪽으로 꺼져!」라고 이탈리아 병사의 총을 빼앗아 던지면서 고함쳤다. 이탈리아군의 무장중대(...)는 어쩔 수 없이 포로로 잡아주는 영국군을 찾기 위해 다시 총을 주워 또 터벅터벅 걸어갔다.








고문을 받은 이탈리아군


이탈리아인의「약함」은 처세술의 하나이기도 하다.
제 2차 세계대전중, 유고 유격대의 포로가 된 독일군은 끝까지 완고하게 부대의 정보를 일체 발설하지 않았고 고문에도 굴하는 일 없이 꼿꼿해 세르비아인의 분노를 샀지만 이탈리아군은 곧바로 울며 용서를 빌었으므로 고문이 멈추었다고 한다.







이탈리아인은 지역마다 강약이 다른가?


제1차 대전시까지는 각 지방에서 징병한 장병들을 균등하게 각 부대에 할당하고 있었지만1차 대전 후에는 지역별 편성으로 군제가 바뀌었다. 그러나.........이탈리아군의 약함에 지역차이는 없었다.







우리가 졸리면 저쪽도 졸린


이탈리아군은 밤이 되면 「우리가 졸리면 상대방도 졸리다. 그러니까 공격해 오지 않을 것이다」 라며 경계도 세우지 않고 취침했다. 그 결과....수많은 기습을 허용했다.




국가나 민족이라는 의식이 희박한


이탈리아군의 병사가 한밤중에 눈을 떴는데 소대장이 어디론가 나가려는 중이었다. 병사는 소대장에세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그러자 소대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 나는 국가를 위해서는 목숨을 걸지 않는다. 나는 노예가 아니기 때문에!」

짐을 싸면서 그 대장은 매력적인 미소를 보이며.......

「 내가 목숨을 걸 때는 반한 여자를 지킬때 뿐이다!」

........라고 웃는 얼굴로 상쾌하게 말하며 전선에서 이탈해갔다. 그러자 병사도.....

「 소대장님! 기다려 주십시오!」

......뒤돌아본 소대장에게 부하는 이렇게 말했다.

「 저도 함께 갑니다!」라고.

이렇게 아침이 되어 다른 소대원이 눈을 뜨면 뜰수록 소대의 수는 줄어들고 있었다. 하루하루 지남에 따라 한 명 줄고 두 명 줄고......결국 영국군과 싸우기 전에 그 소대는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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